한국 생활
결혼
all_serene_
2021. 2. 27. 20:38
.
어리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의 여자가 식당에 들어왔다. 아직 볼이 빨갛고 생글생글 주름이 살짝 든 눈가를 보자니, 서른을 갓 넘겨 보였다.
.
여자는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맛집에서, 소문난 세프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생각에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
이윽고 근사한 옷을 입은 웨이터가 메뉴판을 줬다. 형형색색의 음식 사진들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자의 고민이 길어지자, 식당에 있던 모두가 여자의 메뉴판을 강렬하게 보고 싶어했다. 한 회색 신사는 자기가 여기 와본 적이 있다며 거들먹거리고, 또 다른 신사들은 '세프추천'을 '점심특선'에만 먹어야 후회하지 않을거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저 멀리 앉은 노신사는 고민이 길어지는 여자가 안타깝다며 혀를 끌끌 찬다. 다시 오지 못할 식당이라 여자는 망설여졌다.
.
시간이 지나자, 여자의 형체와 목소리는 메뉴판 앞에 득달같이 모여든 인파에 떠밀려 사라졌다. 여자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죽은 듯이 책상에 엎드렸다.
.
.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리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의 남자가 식당에 들어왔다.
.
회색 신사들의 번뜩이는 눈이 즉시, 남자에게로 향했다.
.
[결혼] 2020. 12.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