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가 이렇게 예뻤나?
공부가 잘 되지 않고 마음이 싱숭생숭 할 때마다 동네에 있는 공동묘지를 걷는다.
크고 예뻐, 누군가가 잘 가꿔놓은 정원같다.
여러군데, 참 자주, 벤치가 있다. 사색을 위한 자리겠거니 싶어 앉아본다. 햇볕이 좋다.
묘비에 적혀있는 강렬한 숫자들을 눈으로 곱씹다, 잠들어 있는 죽은 자들의 생전의 삶들을 그려보았다.
익숙한 숫자에 눈이 멈췄다. 1990년생.
너는 나랑 동갑내기였구나.
1990이라는 숫자가 존재에 대한 사색을 시작하게 했고, 마무리를 짓기 위한 설명에는 항상 신이 필요하다.
인생의 덧없음과 신의 존재는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인생의 끝이 있다는 사실은 무기력하게 들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끝은 신의 주체성과 뗄 수 없기에, 오히려 주어진 삶을 향한 건강한 애착을 갖게 한다. 기억하고 살면 지금, 여기가 더없이 행복하다.
삶은 끝이 있다. 순서도 모르는 그 끝.
인생은 설명 되지 않고, 설명이 필요 없는 것들로 가득찬, 그래서 모호하다. 흐릿하다. 알 수 없다.
생각을 접고 공동묘지 울타리 문을 닫고 나오는데, 꽃향기가 물씬 몸으로 들어왔다.
2020.04.25
*독일은 참 알 수 없는 나라다. 공동묘지가 동네 한복판에 있는 것도 이상한데, 독일 내 어느 곳보다 그 풍경이 아름답다. 주말이 되면 곳곳에 사람들이 걷고, 책도 읽는다. 외국인인 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 옳은지 틀린건지 어린아이처럼 잘 몰라, 로컬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본다. (이상한 외국인이라고 손가락질 받기 싫으니 눈치 레벨이 엄청 높아졌다. 삶에 도움이 되겠지.) 저들도 여기를 사랑하는 듯 하니, 여기 자주 와서 앉아있는 게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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