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신앙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여기 저기 부딪히다가 나의 하나님을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내 20대는 그야말로 크리스찬의 수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폄하되고, 여기저기 교회같지 않은 교회가 성경을 먹칠하였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교회들만 비판받아야하는 특이한 교회들이 아니였다.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에서도 '나약한 사람인지라'라는 변명들로 서로를 상처주는 일이 많았다. 일반 성도들이야 성화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이해하고 넘길 수 있었지만, 교역자들의 이슈앞에서는 내 스스로 갈등이 심했다. 교회가 나의 삶의 큰 부분이였던지라 참 다양한 목사님들을 만났다. 어릴적 나에게 목사님은 목사님 자체였다. 그 어떤 정의와 수식어도 필요없었다. 내 위에 세우신 분이기에 순종하고 기도로 조력하라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아무 평가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혹여나 부정적인 마음이 들면 죄를 짓는 느낌이라 그 마음조차 꾹꾹 눌렸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점점 교회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독일에서는 혼자 있을 시간이 넘치고 넘쳐 의도치 않게 묵상할때가 많다. 무료해 베드로의 이야기를 읽었다. 예수님의 가장 첫 제자이자 사랑받았던 그가 예수님이 잡히자 3번 부인한 그 순간.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향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3번 되물어보신 장면.
부끄러워졌다.
내 스스로가 끝도 없이 높아져 평가하고 부정했던 교회 안의 그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하시는데, 나는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했다. 개독교라고 욕 먹는 이유 중에 나도 버젓이 큰 몫을 했다. 공동체가 힘들었던 순간은 사실 그들보다 내 안의 쓰레기들의 파티였다. 몇몇 교역자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든 날들은 나를 돌아봐야할 때였다. 나 아닌 타인에 관해서라면 그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글로 쓰면서 다짐하는거야 쉽지, 매일이 힘들다. 예수님의 제자처럼 살겠다고 당차게 말하던 10대의 나는 그 '제자'의 삶의 얼마나 힘든건지 점점 몸으로 느껴져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지.' 라며 (물론 진리다!) 자위하는 것보다 이젠 좀 그분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싶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베드로의 한탄하는 표정이 동상으로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 나는 베드로의 표정 앞에서 그의 감정이 나의 그것으로 투사되어 부끄러웠다.
너 정말 날 사랑하느냐.
나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게 맞을까.
2019.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