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버릇이 나쁜 학생을 만났던 적이 있다. 결국에는 고쳐져서 5학년으로 올려보냈다. 소문으로 익히 들어, 학기 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아이에게는 도벽이라는 버릇 넘어 많은 굴곡진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나서, 내 신념으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그만둘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아이를 아이 자체로만 보니, 도벽이 없어졌다. 아이와 아이 부모가 고마워했다.

 

독일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주위에 게이 친구들이 어쩌다보니 많아졌다. 게이인줄 몰랐는데, 점점 친해지면서 그들이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혐오 정서에 평생 노출되어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줘야 할 지를 몰랐다.

 

나에게 분명 동성애는 죄다. 죄였고 죄일 것이다. 내 가치관이고 흔들릴 수 없는 신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들을 동성애자로만 보이지 않는다. 동성애라는 정체성 말고도, 그들에게는 수많은 다양한 정체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딸이고, 케이팝을 좋아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교육을 전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게이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에게 동성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지만, 니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너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 처럼, 너 또한 이런 신념을 가진 나라는 존재를 인정해달라고 했다.

 

그 죄를 이길 수 없다면 피하라고 했다. 죄는 피하지만, 죄인까지 피해야하나. 그럼 누가 죄인이 아닌가. 나는 죄인이 아닌가. 동성애자라는 죄인이기 이전에 그들도 사람이고, 이성애자라는 사람이기 이전에 나는 죄인이다. 동성애와 내가 매일 짓고 있는 죄가 그렇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죄는 합의될 수 없기에, 매일매일의 나도 혐오스럽다.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게이라는 이슈가 언급될 때마다 내 입장을 분명히 한다. 싸우지 않는다. 선한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언젠가 그들이 들으려고 할 때, 내가 알고 있는 굿 뉴스를 말해주고 싶다. 내가 포기하거나, 그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 저버리면 이 관계는 끝이 난다. 현재로썬, 지금 여기 우리가 서로를 다른 여러개의 자아들로 구성된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는 것에 집중한다.

 

지인이 차별반대법에 관한 링크를 보내주셨다. 이 반대 운동이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을 당당하게 말하고 존중받고 싶은거라고 생각하기에, 반대 버튼을 클릭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하나님 말씀앞에서의 자기 반성과 이웃 사랑.. 나에겐 이것이 중요하다. 성경지식이 많질 않아 정확히 잘 모르지만, 아무튼 혐오는 아닌 것 같다. 죄는 죄고, 사람은 사람이다.

 

p.s. 본인(목회자 제외)은 성경을 주석까지 찾아보기에 자꾸만 가르칠 것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은 부담스러워 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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