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탄 승객들의 눈이, 헬스장에 운동하러 온 사람들의 눈이, 캐셔 앞에 줄 서 있는 구매자들의 눈이 모두 스크린에 닿아 있다.

학부 시절, 음악교육 교수님께서 피아노 전공자들이 “상대적으로”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 말씀이 기억난다. 관객을 대면하여 연주하는 다른 악기 전공자들과 달리,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와 나의 관계에만 집중하기 때문이 그 이유였다.

문득 돌아보니 온통 스크린 지옥이다.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평화로운 시대라고들 하지만, 가끔 소름돋게 병적으로 보이는 건 나만 느끼는 건가.

2019.12.17 직원도, 손님도 스크린만 보고 있는 맥도날드에서.

p.s. 사족이지만, 뒤이어 교수님께서는 성악가들은 가장 직접적으로 관객을 대면하기에, 쇼맨십과 사교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그룹이라고 하셨다. (허나, 교수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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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8. 체코 프라하

나는 어릴 때부터 살에 민감했다. 특히 청소년 기에는 거의 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목욕탕만 가면 엄마랑 동생에게 "저 여자 다리가 굵어, 내 다리가 굵어"를 물어보며 그들을 귀찮게했다. 병이였다. 내가 먼저 태어난 2년을 제외하고 죽 나와 평생을 같이 지내는 여동생이 항상 소위 '옷빨 잘 받는 마른 몸매'를 가졌기도 했고, 자라면서 경험한 여러 사건들이 날 더 강박증에 걸리게 한거 같다. 아무튼 난 살찌는게 너무 무서웠다. 거울에 비친 내 몸뚱아리가 한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다리가 코끼리 같았고, 얼굴이 길고, 팔뚝이 두껍고 등등. 난 왜 내 동생처럼 마르지 않았을까를 입에 달고 살았던 거 같다. 병이였다 정말.

독일에 와서 강박증이 조금, 아니 거의 감해졌다. 일단 여긴 나를 덩치있는 여자로 보지 않고, 게르만족답게 나만큼이나 뼈대 굵은 여자애들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누구도 내 몸매로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맨날 들었던 '너 살 빠졌네 혹은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식과 같은 인사를 하지 않는다. 이상하리만큼 내 외모에 대해 관심이 없다. 아, 내 지도교수님과 박사생 친구들은 내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것에 놀랐던 적은 있다. 유럽인 서른하고, 아시아인 서른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아시아인들이 동안이긴 하다. 그래서 여기서 나는 서른이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왜냐면 애들이 놀라는 모습이 뭔가 뿌듯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면에서 독일이, 혹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도시마다 다를 수 있으니) 참 편하다. 화장을 하든 안하든, 옷을 트렌디하게 입든 안입든, 상관없다. 단정하고, 밝게 웃고, 매너 좋고, 대화가 잘 통하면 나를 좋게 보는 거 같다. 분명 여기 젊은 애들에게도 뷰티의 기준이 있을텐데, 어쩌면 내가 다른 인종이라 나에게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쓰면서 든다. 어쨌든 한번도 외모, 몸매, 패션 지적을 당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예쁘지 않아도 되고, 마르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 예쁨과 예쁜 몸매의 기준이 없고, 좋은 인상과 건강한 몸만 남은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 일년 반 정도 있으면서 드디어 내 몸을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번 여름에 한국 가보니 나는 세상 뚱뚱하고, 촌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바꾸는게 참 힘들다.

2019.11.27 운동 다녀와서 몸무게 체크 후 든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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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피부의 톤과 윤기가 사람의 인상을 어느정도 결정 짓는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피부 기초 제품에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를 합니다.

독일의 석회물과 건조함으로부터 제 피부를 지키고자, 여태껏 기초 제품은 무조건 한국에서 가져왔는데요. (아이오페, 설화수 계열...사랑합니다...^_^)

이번에 한국인 유학생들, 독일 현지 친구들에게 추천 받아 크림을 구입했습니다. 이름은 리놀라 (LINOLA) 페이스 크림입니다. 아, 참고로 저는 극건성, 매우 건성, 아주 건성, 수분 크림 2시간마다 펴바르는 건성입니다. 건성 피부는 사실 지성 피부보다는 관리하기 쉬운 것 같기도 해요. 수분 공급 잘해주면 트러블 나지 않거든요. 그리고 트러블이 잘 나지 않으니, 겉으로는 좋은 피부를 가져 '보이죠'. 

그럼 리뷰 시작해볼까요.  

그 전에 리놀라 페이스 크림에 대해서 구글링으로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페트(Fett) 제품과 일반 제품이 있는데, Fett는 오일이 섞여 있어서 좀 더 유분감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산 일반 제품도 저는 충분히 유,수분감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독일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최저가로 10유로였고, 저는 동네약국에서 12.90 유로에 샀어요. 저 사실.. 온라인 구매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인생을 촌스럽고 불편하게 산답니다. 

 

 

 

 

 

친절하게 영어로도 설명이 적혀있었구요, 해석해드리면, 매우 건조하고 자극에 예민한 피부에 적합하다고 되어있습니다. 또 피부 자체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리놀레산(다불포화 오메가-6 지방산. 음식물을 통해 섭취. 사람의 필수 지방산들 중 하나)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리놀레산이 피부에 부족하면 오히려 피지가 더 두꺼워지고 기름져요. 그래서 리놀레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크림을 쓰면 피지가 부드러워져 모공이 막히지 않고, 그 뜻은! 좋은 영양은 쏙쏙 흡수된다는 뜻이죠.

* 참고로 올레산이라고 아보카도, 마룰라, 티마누 오일에 함량 비율이 높은 성분이 있는데요. 올레산은 리놀레산보다는 제형이 두껍고 무거워요. 그래서 저처럼 극건성은 올레산이 다량 함유된 오일을 한겨울에 쓰면 정말 좋죠. 시중에 파는 오일은 대부분 이 리놀레산과 올레산의 혼합물이구요, 자기 피부에 맞춰서 함유량 확인하고 똑똑하게 쓰세요. 

계속 읽어보면, 피부장벽을 튼튼하게 해서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해주고, 어떠한 화학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다고 적혀있네요. 유아부터 남녀노소 불문하고 쓸 수 있는 매우 body-friendly 한 제품입니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네요. 오픈한 순간부터 3개월가량 쓸 수 있다는데, 사이즈를 보니 전 아마 한달 정도 쓸 거 같아요. 사이즈 비교 제품은 제가 애정하는 설화수 자음유액 샘플입니다. 

독일 제품을 자주 써보시는 분들은 대개 공감하실텐데요, 무향이 대부분이죠. 전 개인적으로, 향에 민감해서 제대로 안 만들거면 차라리 독일처럼 무향이라는 안전한 노선을 선택하는 게 현명한거 같아요. 믿고 쓰는 독일의 약국 화장품입니다. 

 

 

 

발라보니, 알맞게 꾸덕꾸덕하고, 무엇보다 내 피부에 촥 감기는 유분감! 건성인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 꾸덕꾸덕한걸 사랑하잖아요. ㅎㅎㅎㅎ 한 통 다 쓰고 아래 댓글창에 추가 리뷰 달게요. 그럼 우리 모두 예쁜 피부 오래오래~~~ 츄스!

1. 정치인 유시민에 관해선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순진했을 때 진보의 뜻은 '모두가 함께 손 잡고 좋은 쪽으로 한 발 씩 나가는 것. 힘 없는 민중을 위한 목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은 근본이 악해서 절대 함께 갈 수 없다는 게 요즘 내 결론이다. 따라서, 인간의 악함을 전제한 이상, 결을 같이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이상(ideal)일 뿐이다. 인간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말이다. 그렇다고 나는 태생이 -소위 말하는- *금수저가 아니라, 기득권을 대변하는 보수 집단도 영 탐탁치가 않다. 가진 사람들이 꼭 저라고 싶을까 라는 생각도 종종한다. 아무튼, 그래서 정치 성향이 수시로 바뀐다. 꼴통보수의 도시 TK 에 연고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가도, 이러니 어른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그러셨나 할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정치 이야기를 금기시하는거 같다. 독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좋은 쪽이 뭘까 함께 고민한다. 독일 정치인들도 그렇다. 토론에서의 승리는 의견을 달리하는 두 팀이 최선을 합의했을 때다. 합의점을 내고 만족해하는 독일 정치가들을 볼 때마다 충격이다. 상대방의 말을 끊으며 언성을 높이는 일은 있을 수가 없고, 있다고 할지언정, 그 국회의원은 정말 부끄러운 짓을 했으며, 다시는 선출되지 않을게 분명하다. 독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청문회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한국사회에서 정치이야기는 곧, 우리와 적을 나누자는 도발이고, 끝은 항상 감정싸움이 되서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자는 주의같다. 니 생각이 나랑 다르다고 어찌 적이 될 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학생운동 경력이 있으며 세월호 뱃지를 단 사람들을 난폭하거나 뭣도 모르는/나라를 망칠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어 속상하다. 가난했던 시절 입에 풀칠하게 해 준 박통을 고마워하는 어르신들을 답답하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 정치에는 정답이 없다. 차선만 있을 뿐. 나는 각자가 지지하는 정당의 가치관을 서로 나누고 존중해서 점점 더 좋아지는 대한민국에서 늙고 싶다. 소위 말하는 국뽕인지 모르겠지만, 독일 사회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우리나라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데 정치로 인한 국민분열이 나라를 발목 잡고 있는거 같아서 아쉽다.

2. 내가 여태껏 생각한 좋은 나라는 앞선 자가 정정당당하게 뛰고, 다수가 뒤쳐진 자를 돌아봐주며, 심사위원(국가)이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공정(실질적 평등)하게 심사하는 나라였다. 생각이 이까지 미쳤을 때, 잠깐. 근데, 만약 인생이 경주가 아니라면. 같은 지점을 보고 1등을 하기 위해 뛰어야 하는게 아니라, 걷고 있는 너는 산책하러 나온 것이고, 뛰고 있는 너는 땀 흘리는 게 좋다면. 제각기 주어진 시간동안 의미를 찾고 행복하면 되는거잖아.

이 인생이 천편일률적 레이스가 되는 게 문제다. 왜 레이스가 됐을까. 인간 사회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알고보면 붕괴된 시스템이고 그 붕괴의 원인은 곧, *돈이다. 돈이라는게 참 무섭다. 빠짐없이 숨어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게 노리고 있다. 정치도, 복지도, 교육도, 그리고 종교집단이 욕 먹고 있는 것도, 모든게 돈인 것 같은 생각은 나만 그런가.

결론적으로, 신이 제한된 시간만큼 우리를 운동장에서 놀게끔 해주셨다면, 악이 그어놓은 하얀 출발선을 개인들이 합의해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그냥 지워버리면 좋겠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은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기준을 조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 쪽 사람들의 행복지수와 만족도가 높다면 더더욱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

책 유시민의 공감필법 책 표지에 웃고 있는 유시민 작가의 사진을 보다가 잡생각이 나서 적었다. 유시민 작가가 텍스트는 남겨져야 내 것이 된다고 했으므로 기록.

*수저 없으면 그냥 포크로 먹으면 안되나. (독일식 개그야..노잼이지만, 나는 초딩 때부터 아재개그가 웃기더라. 아빠 탓인가)

*지난 주말에 KPOP 클럽에서 알바를 했다. 3시간만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왔다. 너무 돈이 많아지니까, 순간 종이 쪼가리 같았다. 2년동안 슈퍼에서 스시 8유로짜리가 비싸서 한 번도 못 사먹은 나에게, 그 순간만큼은 돈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여전히 스시는 못 사먹겠지만ㅋㅋㅋ 돈도... 그냥 종이더이다.

2019.11.18

아침 식사_ 2019년 04월 부활절 연휴

어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친하게 지내는 언니부부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손흥민* 말고는 축구에 큰 관심은 없지만, 축구만 볼 건 아니기에 (한국음식도 있고, 한국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한국말로 떠들어도 되니까)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축구가 끝나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힘듦과 고민들을 나눴다.

언니와, 같이 동행한 오빠는 졸업과 취업을 앞에 두고 무섭다고 했다. 이젠 학생이 아닌 교육받은 (외국인)사람으로 또 다시 언어와 문화장벽을 고스란히 헤쳐나가야 한다는게 무섭다고 했다. 서로 그게 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됐다. 이럴 때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이 멀리 사는 가족보다 낫다고 했나보다. 언니오빠들은 내 기도의 응답이다.

공부가 다 끝나면 한국에 재정착할 목표를 가지고 있고, 책임져야 할 남편과 애가 없는 나는 언니 오빠들에 비해 스트레스가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감당해야 할 논문 심사,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취업이 긴장된다. 경쟁과 긴장 그리고 성취와 좌절의 사이클은 대체 언제 익숙해지는건지. 나중에 일하고 있으면 지금이 너무 그립겠지. 뭐든 너무 잘 까먹어서 다행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교수님께서 2차 전사데이터를 주셨고, 주말동안 분석을 완료했다. 이제 타자만 두드리면 된다. 

2019.11.11. 월요일 도서관. 오늘은 변화를 주기 위해 도서관 자리를 바꿔 앉음. 빼빼로 데이 ㅋㅋㅋ

*내가 한국에 있었어도 손흥민을 이만큼 좋아했을까. 같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손흥민에 나를 투사하는 거 같다.

2020.05.15_우리 동네 뒷산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 아기들의 성장을 기록하듯, 우리 엄마는 임신 사실을 아시고 여동생이 태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매일 육아 일기를 기록해주셨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나의 엄마는 나를 기록해주셨다.

"입덧. 태명: 미소. 여자아이. 뒷통수 짱구. 잘 먹고 잘 자는 딸. 옹알이 시작. 새우깡. 모빌 보며 혼자 잘 노는 딸. 엄마라고 했다. 첫 걸음. "

가끔씩, 살다 보면 내가 별로라고 느껴질 때가 생긴다. 타고 나길 잘난 누군가와 비교하느라, 관계가 끝났을 때, 계획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 왜 그 말을 했나 후회할 때 등. 내가 감각으로 느끼고 행한 것들과 내 존재적 가치는 엄연히 분리해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육아 일기를 읽는다.

누군가에게 나는 이토록 소중한 사람이었다. 내 존재 그대로를 향한 누군가의 긍정.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p.s. 난 촌스러운 걸 좋아하니까 나중에 혹시나 엄마가 되면, 꼭 연필로 육아일기를 써야겠다.

2020.05.15 17:19 내 회복탄력성은 육아 일기로부터.

2019년 크리스마스 트리 봉사 전_ 독일한인교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건지, 어제 하루종일 독일표 천사들을 만나 힐링했다.

장을 보고 가방이 매우 무거웠는데, 자기 자리를 양보해준 또래 독일 청년 그리고 상냥한 미소까지 지어준다.

운동 끝나고 옷 갈아 입을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자기 공간을 조금 내어주는 아주머니.

어떤 할아버지는 내가 버스 정류장을 잘 못 찾으니까, 와서 도와주시려고 한다.

기숙사 담당자는 내가 달걀을 삶고 있으니까 집 나와 사는데 달걀이랑 풀떼기만 먹으면 되겠냐고, 본인이 구운 소세지를 나눠주신다 (저 다이어트 중이라 이거 먹는건데...하지만 암말 안하고 받았다. 독일 소세지는 맛있기 때문에...).

같은 층에 사는 학생들은 마주치면 항상 웃으며 인사한다.

10월에 비자 연장하러 시청에 간 이후로, 나는 독일 사회에 학을 뗐다. 독일에서 얼른 학위 따고 집에 가야겠구나 싶었다. 저변에 깔린 인종차별과 우월의식,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에 감정적으로 지쳤었다.

독일이라서 이래! 저래! 가 아니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이렇구나~ 저렇구나~ 로 마음을 다잡았다. 못된 독일 공무원 같은 사람들로만 독일이 가득차 있진 않으니까, 내 주위에 착한 독일 이웃들이 더 많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공무원들도 돈 벌어 먹고 살기 을마나 힘들겠노..

2019.11.05. 마음 다잡은 화요일, 공부 시작!

2018. 07. 체코 프라하

독일 남부 지역을 여행하고 있을 때, 카톡방이 한 연예인의 죽음으로 난리가 났었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 싼 온갖 억측과 질타, 그리고 안타까움 등의 감정들을 보면서, 나는 연예인은 죽어서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온라인의 악마들로 인해 무척 괴로울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목숨을 끊을 줄은 몰랐다. 그녀가 자살했다고 들었던 그 날 부터 여지껏 가끔 생각이 난다. 무심하게도 새로운 하루하루가 계속 온다는 걸 몸으로 체감하면서, 인생이 그런거지 뭐 하며 죽음에 체념하다가도, 불쌍한 그 사람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공부하려고 도서관에 앉아 랩탑을 켰다. 한 때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의 생일이라는 알림이 떴다. 방중에 한국에 방문 했을 때, 그가 삶을 끝냈다고 들었다. 대학교 졸업 후 딱 한 번 개인적으로 만났고, 그러고 살기 바빠 연락 한번 제대로 못했지만,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꼭 그 배경에 한 번보다 더 많이 있었던 사람이다. 어디간지 모르겠지만, 신께서 안아주시길, 기도했다. 내 방식대로 그를 추모했다.

자살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산 사람이나 잘 살아야한다고 떠들기엔, 죽은 자에게, 나는, 너무 미안하다. 과연 자살이 정말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일까. 트렌디하고, 매 순간 재밌는 걸로 넘쳐나는 다이나믹한 대한민국에서 매 년 자살율이 높아져가는건 아이러니하지만, 무섭게도 사실이다. 자살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하여금 자살로 몰고 가는 사회가 그리고 집단이 원망스럽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눈치, 집단의식 그리고 불필요한 관습들이 결국 행복해야 할 개인을 극단적인 곳까지 몰고 가는게 아닐지.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죽음에 대해서 말해주셨다. 내가 처음으로 삶이 끝난 그 이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수업이었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돌아간단다. 이 세상에 살 동안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돼. 행복하게, 도와가며 살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난 되게 대단해보이지만, 사실 몇 천 년의 역사 속 우린 이 땅을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야."

나보다 조금 짧게 이 곳에 머물다 간 몇 명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유가 어찌됐든, 그들은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였고, 또 내 삶을 아름답게 해 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어디에 있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2019.11.02 토요일 도서관 14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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